친정엄마가 아빠에게로 간지 5년


셋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1941년생, 국문과를 나온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2남 4녀 중 셋째 딸인 엄마. 두 언니가 성장할 땐 집도 잘 살았다고 하는데 엄마는 별로 모르겠다고^^
엄마가 대학교 다닐 때 두 언니는 시집가고, 오빠는 군대 제대 후 외숙모와 열애중였고, 엄마는 대학 졸업 후 실질적 가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아래 동생에게 공부하라 해 둘째 외삼촌도 건축학과를 나오셨습니다. ㅋㅋㅋ 막내이모는 공부를 안 하더라며...
시댁(나의 할아버지)에선 돈 벌어 친정 다 갖다 주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하셨다지만 엄마를 끔찍이 사랑하신 아빠.
친구 결혼식장에서 엄마를 본 아빠가 따라다녀 결혼 성공. 외할머니께서 아빠를 엄청 맘에 들어하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79세에 "암" 진단을 받으셨고,
수술하자는 의견에 수술도 했지만 막상 개복해 보니 너무 넓게 퍼져 있어 그냥 고생만 하신 케이스.
1년을 고생하시고 가셨지만 3남매에겐 사랑 가득 남겨 주셨습니다.

남자 3. 이 전화했다고 남겨 놓으신 문자.

남자 3. 은 대학 1학년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 학교가 너무 가기 싫다며 군생활중 다시 수시접수를 하고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입학을 축하한다며 메모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제대 후 보자시 더니 마지막 휴가 와서 인사드리고 6일 후 ㅠ ㅠ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코로나였지만 매일 방문하는 남동생.
병실을 옮기고, 간병인을 따로 구했습니다.

1월 1일 그 필체는 어디 가고....
체중이 36.3kg까지 빠지셨습니다. 엄마의 마지막 메모
엄마는 그렇게 6월 6일 새벽 3시 20분 아빠 곁으로 가셨습니다.
멀리 사는, 직장 다니는 이 딸은 늘 금요일 퇴근 후 올라갔었는데 돌아가시는 그날은 내 몸이 안 좋아 다음 주에 가겠다고 했는데
마지막 통화가 짧게 "정아야, 엄마가 좀 힘들어." 그렇게 퇴근하면서 건 짧은 통화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내 생일이 7월 2일.
엄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5월) 제게 마지막 선물을 주셨습니다.
"엄마, 내 생일 아직 멀었는데?"라고 했더니 "생각날 때 줄게~" 하시던 엄마.

엄마의 봉투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남동생은 제사음식을 장만할 때 꼭 따로 우리가 먹을 판교에서 유명 한 맛집을 찾아 음식을 따로 준비하는데
이번엔 제가 LA갈비 재워 가겠다고 했습니다. 늘 명절에 시댁만 준비해 갔었는데 올해 큰아버지께도 만들어 가고 나니
동생들이 생각나는 겁니다. 올해는 올케도 교육일정이 잡혀 늦게 퇴근한다고 하니 제사 외 먹거리는 내가.
ㅎㅎㅎ 물론 저도 퇴근해서 올라 가는 거지만 오늘 갈비 사서 재워 놓고 내일 가져가려 합니다. 잡채도 만들어 가고 싶지만 도저히 시간이 안될 것 같고 갈비야 하루 재워둬도 되니.
며느리도 남자 3. 도 3교대 직장이라 못 오고 우리 집은 남자 2. 와 저만 참석하는 걸로.
언제까지 제사를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딸들은 동생의견에 무조건 따릅니다. 제사비? 물론 각자 성의껏.
늘 아무것도 해오지 않아도 된다며 혼자 준비하는 올케. 늘 고맙습니다.